2009년 01월 29일
홍상수, <해변의 여인>(2006)

인간의 삶을 오로지 성적욕망과 죽음 사이에서 저울질 했던 프로이트의 서설은 수많은 재론을 거쳐 부정되었다. 그렇지만 단 이 사람, 홍상수 감독에게만은 프로이트가 절대적 메시아로서 다가온다. 감독은 인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단위들은 결국 몇 단계를 거쳐서 섹스와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프레임에 노골적으로 투영한다. 노골적은 반드시 적나라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치부보다는 그것을 가리기 위한 치사의 다단계를 펼침으로서 일상의 대화가 얼마만큼 코믹하게 들릴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영화 <해변의 여인>(2006)에서는 <라이터를 켜라>에서 악바리 블루스를 외쳤던 김승우와 순정파에서 털털한 연기파로 전철을 밟은 고현정 카드를 꺼내듦으로서 감독의 의도를 더욱 드러냈다. 실상 전달되는 메시지는 <극장전>(2005), <생활의 발견>(2004)등 일련의 리얼리즘 작품들과 비슷하지만 순간 던져지는 긴장의 재미를 무시 못한다. 자신의 스텝인 원창욱과 그의 애인 김문숙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을 따라 김문숙과의 동침을 강행하는 김중래 감독의 모습은 흔히 말하는 ‘짐승’과도 같다. 그렇다고 본능을 극단으로까지 끌고 가지는 않는다. 창욱에게 들킬까봐 일을 마치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지위와 본능에 관한 이중적 태도. 영화는 이러한 양면성에 획을 긋고 각자 주인공들을 위치시킨다. 감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에게 쉽게 접근하는 김중래, 유부남이지만 김문숙이라는 애인을 둔 원창욱, 이혼녀라는 부담을 안고 해변을 찾은 최선희는 모두 사회적 지위와 본능을 일치시키지 못한다. 각자가 놓인 경계를 이겨보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으려는 남녀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안정적인 방으로 들어간다. 방은 욕망을 드높여 또 다른 불륜을 낳고 집착을 야기한다. 하지만 누구하나 불안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김중래는 김문숙과 최선희와 차례로 관계를 가지면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시나리오의 완성을 꿈꾼다. 원창욱은 김문숙과 김중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감독과 스텝과의 관계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김문숙은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갖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최선희는 이혼을 했다는 사실에 상처받기를 두려워한다. 무엇인가 쿨 해보이는 사람들이 겪는 양면성의 갈등. 그것을 적재적소에서 메우지 못하고 방치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미지. 김중래가 김문숙을 어떻게 해서든 안심시키려하는 대목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이 한단어의 부당함을 역설한다. 우리는 이미지에 갇혀있다고, 그리고 싸우고 있다고. 그게 얼마만큼 힘들다는 것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를리는 없다. 그런데도 김문숙은 김중래의 궤변을 잘도 받아낸다. 그녀가 믿고싶은 그의 진실 때문이다. 믿음은 어느 새 집착으로 변하고 그것은 서러울만큼 아픈 사실에 상처받는다. 이쯤되면 일반적으로 복수의 칼날을 가는 시퀀스로 이어지겠지만 영화는 어느 덧 결말을 맺는다. 감독이 그녀의 등쌀에 못이겨 해변을 떠난 다음 날, 그녀는 태연한 듯 아침을 맞이하고 길을 나선다. 감독의 전화를 받고도 못내 그 사람이 상처받을까봐 욕 한마디 제대로 던지지 않는다. 상처받는게 두려웠을까? 아니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그랬던 것일까.
본능을 거스를 수 없고, 사회적 지위망에 갇혀사는 우리들의 삶은 늘 역설을 토해내기 마련이다. 본능에 충실했던 프로이트는 유머감각은 없었던 것 같다.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만을 갈등으로 여겼던 그가 사회적 지위로 쩔쩔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했더라면 아마도 코미디 단막극을 하나 써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너무도 지독하게 드러낸 삶의 일상성 때문에 자기 내면이 노출된 불쾌감이 컸던 연유일지도. 정말 개만한, 아니 개만도 못한 일상이다. 부부와 함께 해변을 거닐던 개만이 버려지고 다시 새 주인을 만나 구원받는다. 사춘기의 욕망을 달랬던 달력속의 해변의 여인들은 저마다 아줌마가 됐을 터. 합리적인 낙원은 없다.
# by | 2009/01/29 03:40 | 영화는 창조의 요람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