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해변의 여인>(2006)



인간의 삶을 오로지 성적욕망과 죽음 사이에서 저울질 했던 프로이트의 서설은 수많은 재론을 거쳐 부정되었다. 그렇지만 단 이 사람, 홍상수 감독에게만은 프로이트가 절대적 메시아로서 다가온다. 감독은 인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단위들은 결국 몇 단계를 거쳐서 섹스와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프레임에 노골적으로 투영한다. 노골적은 반드시 적나라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치부보다는 그것을 가리기 위한 치사의 다단계를 펼침으로서 일상의 대화가 얼마만큼 코믹하게 들릴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영화 <해변의 여인>(2006)에서는 <라이터를 켜라>에서 악바리 블루스를 외쳤던 김승우와 순정파에서 털털한 연기파로 전철을 밟은 고현정 카드를 꺼내듦으로서 감독의 의도를 더욱 드러냈다. 실상 전달되는 메시지는 <극장전>(2005), <생활의 발견>(2004)등 일련의 리얼리즘 작품들과 비슷하지만 순간 던져지는 긴장의 재미를 무시 못한다. 자신의 스텝인 원창욱과 그의 애인 김문숙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을 따라 김문숙과의 동침을 강행하는 김중래 감독의 모습은 흔히 말하는 ‘짐승’과도 같다. 그렇다고 본능을 극단으로까지 끌고 가지는 않는다. 창욱에게 들킬까봐 일을 마치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지위와 본능에 관한 이중적 태도. 영화는 이러한 양면성에 획을 긋고 각자 주인공들을 위치시킨다. 감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에게 쉽게 접근하는 김중래, 유부남이지만 김문숙이라는 애인을 둔 원창욱, 이혼녀라는 부담을 안고 해변을 찾은 최선희는 모두 사회적 지위와 본능을 일치시키지 못한다. 각자가 놓인 경계를 이겨보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으려는 남녀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안정적인 방으로 들어간다. 방은 욕망을 드높여 또 다른 불륜을 낳고 집착을 야기한다. 하지만 누구하나 불안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김중래는 김문숙과 최선희와 차례로 관계를 가지면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시나리오의 완성을 꿈꾼다. 원창욱은 김문숙과 김중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감독과 스텝과의 관계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김문숙은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갖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최선희는 이혼을 했다는 사실에 상처받기를 두려워한다. 무엇인가 쿨 해보이는 사람들이 겪는 양면성의 갈등. 그것을 적재적소에서 메우지 못하고 방치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미지. 김중래가 김문숙을 어떻게 해서든 안심시키려하는 대목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이 한단어의 부당함을 역설한다. 우리는 이미지에 갇혀있다고, 그리고 싸우고 있다고. 그게 얼마만큼 힘들다는 것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를리는 없다. 그런데도 김문숙은 김중래의 궤변을 잘도 받아낸다. 그녀가 믿고싶은 그의 진실 때문이다. 믿음은 어느 새 집착으로 변하고 그것은 서러울만큼 아픈 사실에 상처받는다. 이쯤되면 일반적으로 복수의 칼날을 가는 시퀀스로 이어지겠지만 영화는 어느 덧 결말을 맺는다. 감독이 그녀의 등쌀에 못이겨 해변을 떠난 다음 날, 그녀는 태연한 듯 아침을 맞이하고 길을 나선다. 감독의 전화를 받고도 못내 그 사람이 상처받을까봐 욕 한마디 제대로 던지지 않는다. 상처받는게 두려웠을까? 아니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그랬던 것일까.
 

본능을 거스를 수 없고, 사회적 지위망에 갇혀사는 우리들의 삶은 늘 역설을 토해내기 마련이다. 본능에 충실했던 프로이트는 유머감각은 없었던 것 같다.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만을 갈등으로 여겼던 그가 사회적 지위로 쩔쩔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했더라면 아마도 코미디 단막극을 하나 써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너무도 지독하게 드러낸 삶의 일상성 때문에 자기 내면이 노출된 불쾌감이 컸던 연유일지도. 정말 개만한, 아니 개만도 못한 일상이다. 부부와 함께 해변을 거닐던 개만이 버려지고 다시 새 주인을 만나 구원받는다. 사춘기의 욕망을 달랬던 달력속의 해변의 여인들은 저마다 아줌마가 됐을 터. 합리적인 낙원은 없다.



by 소울자 | 2009/01/29 03:40 | 영화는 창조의 요람 | 트랙백 | 덧글(0)

연예병사 류석현의 음악 파도타기<21> 대중음악

신중현 국내 첫 록 밴드 도입
 

얼마 전 열린 2006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공로상이 신중현(사진)에게 돌아갔습니다. 신중현은 국내 최초로 록 음악 밴드(보컬·기타·베이스·드럼) 개념을 도입하고 기타연주의 지평을 연 인물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또 김추자·펄 시스터즈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에게 혁신적인 곡을 써 줬던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빗 속의 여인’ ‘미인’ 등 히트곡 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중현의 업적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퇴폐’와 ‘저속’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다.지금까지 글을 연재하면서 썼던 모든 주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음악’보다 ‘대중음악’에 가깝습니다. 거장으로 불리는 신중현도 음악의 발전보다 대중음악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단지 ‘대중’이라는 수사가 하나 더 붙는다고 해서 개념상으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만은 이제까지 ‘이질적인’ 말로 통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음악보다는 소위 ‘엔터테인먼트’적 의미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뜻하는 ‘대중’은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의미보다 질 낮은 문화를 공유하는 뜻에 더 가까웠습니다. 한때 신중현이 만든 음악들이 퇴폐문화를 조장한다는 차원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중을 계몽하겠다는 취지 하에서 ‘건전가요’를 넣어야만 앨범 발매가 가능했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질이 좋고 나쁨을 떠나 음악은 그 자체로 ‘소리를 듣고 즐기는 것’입니다. 클래식에서 흔히 말하는 ‘영혼을 정화한다’는 표현을 빌려오지 않아도 음악은 듣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소비가 됩니다. 그것은 분명 높고 낮음을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신중현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트로트는 고급음악이었고 민요는 저급음악으로 통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트로트곡 ‘사의 찬미’를 부른 사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문화가 고급과 저급을 넘나들 수 있는 것입니다.대중음악은 교육을 통해 알려지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예술’입니다. 매체 환경에 둘러싸여 겉으로만 드러나는 부정적인 측면이 대중음악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음악은 단지 순수예술계에서 인정하지 않은 다양한 음악세계를 뜻하는 말일 뿐입니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병장 류석현>

2006.12.26

by 소울자 | 2008/08/24 01:41 | 음악 파도타기(국방일보 연재) | 트랙백 | 덧글(0)

연예병사 류석현의 음악 파도타기<20> 뉴에이지

 

사회를 살아가며 느끼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인간미를 원합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람을 안아주는 프리허그(free hug)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한 것은 각박한 인간관계 속에 마음의 따스함을 원했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안정을 되찾아 주고 상처를 치유해 주는 음악이 곁들여진다면 행복은 더 커질 것입니다.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어 인간을 존중하는 ‘뉴에이지(New age)’ 음악은 그래서 소중합니다.


뉴에이지 음악으로 불리는 것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피아노 음악입니다. 피아노 소리는 사람들이 안정을 필요로 할 때 많이 찾는 음악입니다. 뱃속의 태아시절부터 학교와 학원교육까지 우리는 줄곧 피아노 소리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설령 클래식 피아노 음악은 싫어하더라도 피아노로 연주된 발라드 곡에 무의식적으로 동요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아한 피아노 음악을 들으면서 어릴 적 순수함을 떠올리고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피아노 음악은 클래식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부류에 속합니다. 서양의 고전음악을 대변하는 클래식이 기독교적인 정서에 근거한 반면 피아노 음악은 인간이 살고 있는 대지, 즉 자연의 영향을 받은 음악입니다. 자연과 인간 중심이 되는 삶, 이것이 뉴에이지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김광민·이루마·유키구라모토 같은 피아니스트들의 곡 중 상당수가 인간의 사랑,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들입니다. 인간이 인간과 그 주변의 것을 예찬한다는 점에서 일부 종교에서는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개념과 정의의 차이일 뿐이며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이에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요즈음에는 종교음악들이 뉴에이지의 긍정적인 면을 골라 활용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피아노 음악의 인기만큼 다른 악기 음악들이 빛을 발하지는 못하지만 첼로나 색소폰 등 연주되는 형태는 다양합니다. 악기의 특성에 따라 혼자 연주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부족한 면을 다른 악기로 보완해 완성하기도 합니다. 악기는 표현수단이기 때문에 연주자의 실력은 뉴에이지 음악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음악을 통해 평화로운 인간의 내면을 맛볼 수 있고, 자연의 진실된 모습을 추구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면 되는 것입니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병장 류석현>

2006.12.19

by 소울자 | 2008/08/24 01:39 | 음악 파도타기(국방일보 연재) | 트랙백 | 덧글(0)

연예병사 류석현의 음악 파도타기<19>영화음악

 

언젠가부터 국내영화를 본 관객들이 ‘음악 참 맘에 든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90년대 중반 할리우드 영화 전성기 시절만 하더라도 국내영화를 보고 음악을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라디오 영화 프로그램과 대학 강의에서조차 해외 영화음악을 소개해 주는 데 지나지 않았습니다. 국내영화 음악은 한낱 대중가요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양분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내영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상 일반 가요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영화는 망했는데 수록곡은 가요순위 수위권을 차지했던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The last waltz’를 듣고 ‘올드보이’를 떠올리는 지금과는 달리 ‘그대안의 블루’는 단지 그대안의 사랑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고정된 시각은 단번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장면에 충실해 곡을 썼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쉽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 ‘접속(1997)’이 영화음악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영화는 국내음악으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이를 깨고 외국 곡을 사용해 성공한 것입니다.

영화에 수록된 ‘A lover concerto’는 주요 장면마다 등장해 이야기 흐름에 영향을 주었고 관객들은 음악을 통해 영화를 기억했습니다. 국내음악이 아닌 해외음악을 선곡한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음악이 영화에 차지하는 비중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후 ‘쉬리(1999)’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친구(2001)’ 같은 흥행작들이 외국곡을 사용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영화음악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국내 창작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영화 전체의 테마를 작곡하는 것은 물론, 웅장한 분위기의 편곡을 해내는 등 음악의 질을 스스로 높여갔습니다. 여기에 기존 대중 음악계에서 활동했던 실력 있는 뮤지션들도 가세하면서 선의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습니다.영화 ‘형사’의 작곡자 조성우와 ‘왕의 남자’의 이병우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영화음악 콘서트를 열 정도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천만 관객의 슬로건도 좋지만 ‘영화음악가’라는 명함으로 이들의 활동 영역이 더 넓어졌으면 합니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병장 류석현>

2006.12.12

by 소울자 | 2008/08/24 01:38 | 음악 파도타기(국방일보 연재) | 트랙백 | 덧글(0)

연예병사 류석현의 음악 파도타기<18> 훵크와 그루브

어깨춤 절로 흥겨운 흑인 댄스 음악
 

음악 용어 중에서 번역상의 문제로 오인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90년대까지 ‘펑크’로 사용되다 흑인 음악이 보편화되면서 표기가 바뀐 ‘훵크(funk)’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펑크(punk)는 지난번 ‘인디음악’편에서 소개해 드렸듯이 ‘강렬한 저항’으로 상징화된 록 음악입니다. 반면에 훵크는 재즈에서 영향을 받은 흑인 댄스음악을 말합니다. 90년대 댄스음악 가사에서 ‘펑키한 리듬’ ‘펑키한 감각’이라는 말은 ‘펑크(punk)’가 아닌 ‘훵크’에서 따온 것입니다.

‘훵크’는 멜로디보다는 리듬감이 요구되는 음악입니다. 흑인음악의 특성이 본래 리듬감이 많은 음악이지만 훵크는 그 자체가 리듬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멜로디를 이끄는 기타와 피아노(혹은 오르간)도 훵크 음악에서는 리듬도구의 일부로 편입됩니다. 16비트의 빠른 리듬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연주인들이 속주 능력을 지니는 것도 필수입니다.

리듬이 어느 정도 고조된 가운데 발생되는 그루브(groove)는 흑인음악의 묘미입니다. 박자가 흐트러지는 것이 아닌데도 춤이 절로 나오고 어깨가 들썩입니다. 그루브는 사전적으로 ‘흥겨움’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이지만 의미를 속속들이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훵크 음악에서 찾는다면 이를 ‘연주와 쉼의 반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연주되던 악기가 쉬게 될 경우 공간이 생길 때 다른 악기가 연주됩니다. 그리고 이 행위가 반복되면서 일정한 리듬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연주악기가 변하는 즉흥적인 재미를 느끼면서, 리듬이 안정돼 재미가 있는 음악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특히 훵크가 밴드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연주체계라는 점에서 록 음악이나 댄스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흑인음악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시작은 흑인음악에서 비롯됐지만 우리나라도 훵크를 전하고 발전시킨 뮤지션들이 있습니다. 77년 데뷔해서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랑과 평화는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같은 히트곡을 낸 우리나라 최초의 훵크 뮤지션입니다. 전자기타의 달인인 한상원의 경우 국내 훵크 음악의 자존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97년 이현도와 함께한 앨범 ‘D.O Funk’는 힙합과 funk의 접점을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단과 대중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병장 류석현>

2006.12.05

by 소울자 | 2008/08/24 01:36 | 음악 파도타기(국방일보 연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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